[최민수의 상담이야기 14] 밀착된 경계선

한 가족을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상담을 요청하게 된 사유는 부부 갈등이었습니다. 부부의 갈등이면 당사자들인 남편과 아내가 먼저 상담을 시작해야 하는데 상담할 당시에 이 가족은 부부만 상담실에 온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상담실에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그리고 딸, 모두가 상담실에 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족이 다 같이 온 것에 대해서 의아했습니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함께 상담실에 온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 가족은 부부의 갈등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그것보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영역들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의 일에 자식들이 끼어 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관여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그것을 묵인하거나 자식들의 주장이 부부의 의견보다 더 많이 반영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큰 아들은 동생의 영역을 지나치게 관여하였고 딸도 오빠의 영역에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암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가족규칙 중의 하나가 가족의 누군가가 경험하는 것을 가족의 구성원들이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결정이 자녀들의 영향에 좌우되었고, 자녀들 또한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서 부모의 눈치와 입장을 살펴야 했습니다.

이 가족을 상담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느꼈던 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영역과 입장을 존중하고 인정하도록 도와주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암묵적으로 지켜졌던 이 가족의 “우리 가족에게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란 가족 규칙을 교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남은 과정 동안 이 부분에 초점을 두어서 상담을 진행하였습니다.

가족치료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삶의 영역과 정서적인 공간들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것을 건강한 가족의 표지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족 경계선’(Family Boundary)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가족이 서로의 경계선을 유지하고 지켜준다는 것은 가족들이 서로에 대한 입장과 생각, 그리고 영역을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이 속해 있는 영역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옆에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심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건강한 가족일수록 가족의 경계선은 보장되고 유지됩니다. 앞선 사례에서 보았던 가족은 일종의 밀착된 경계선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밀착된 가족 경계선은 가족 구성원들 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의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명확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며,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때때로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방을 열심히 청소를 해주고도 자녀들에게 불평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정돈되지 않은 방을 치워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기껏 청소해주고도 듣는 자녀들의 불평 때문에 마음이 서운했던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서운해하지 마시고 자녀들의 방은 자녀들이 스스로 치울 수 있도록 하십시오. 아마 자녀들은 자신들의 방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부모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 간에 건강한 경계선이 그려지기도 한답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부모님들께서 자식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까?

최민수 목사
The 낮은 교회 담임
상담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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