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탈출한 '보트피플' 소년, 미 해군 제독 됐다
1975년 월남 패망 후 '보트피플' 신세... 첫 '베트남계' 해군 제독
미 해군의 후안 응웬 제독(오른쪽)이 준장 진급 및 해군무기체계사령부 부사령관 취임 기념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올해 창립 244주년을 맞은 미국 해군에 사상 처음으로 베트남계 제독이 탄생했다. 1975년 자유 월남이 공산주의 월맹에 패망한 직후 베트남을 탈출한 이른바 ‘보트피플’ 출신 청소년이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결과라는 점에서 감동을 선사한다.

13일 미 해군에 따르면 베트남계 미국인 후안 응웬(60·Huan Nguyen) 대령이 지난 10일 준장으로 진급해 워싱턴에 있는 해군무기체계사령부(NAVSEA)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NAVSEA는 미 해군이 쓰는 수상함, 잠수함 등 각종 함정과 거기에 장착할 함포 같은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곳이다.

응웬 제독은 1959년 당시 자유 월남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공산주의 월맹과 싸우는 월남 육군의 기갑 장교였다.

옛 월남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 외곽에 살던 응웬 제독은 1968년 공산주의 게릴라, 일명 ‘베트공’의 습격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부터  형제와 누이까지 일가족 7명을 모두 잃었다. 당시 9살이던 응웬 제독도 팔 등에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구조됐다.

이후 응웬 제독은 자유 월남의 공군 대령이던 작은아버지에 의해 길러졌다. 미국이 자유 월남에서 손을 뗀 뒤인 1975년 마침내 월남에 최후의 순간이 왔다. 공산주의 월맹군이 자유 월남 수도 사이공을 함락한 직후 응웬 제독과 그의 작은아버지 가족은 필사적으로 월남을 탈출, 흔히 ‘보트피플’로 불린 난민 신세가 됐다.

미국은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베트남 보트피플 일부를 자국령 괌에 수용했다. 가까스로 괌에 정착한 응웬 제독은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년가량 흐른 뒤 어느 미 공군 장교 부부가 당시 17살 청소년이던 응웬 제독을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 정부로부터 ‘정치적 난민’ 판정을 받고 미국인이 된 응웬 제독은 괌에서 오클라호마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고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줄곧 전기공학을 전공해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그는 1993년 34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로 미 해군에 입대, 기술 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26년간 함정 정비 등 군수 분야의 전문 기술자로 활약해 온 그는 미군에서 최고 영예로 치는 공로훈장(Legion of Merit)과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 등을 수상하며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마침내 퇴역이 얼마 안 남은 60세 나이에 별을 달면서 베트남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해군 제독에 오르는 영예까지 안게 됐다.

응웬 제독은 진급 및 NAVSEA 부사령관 취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해군에서 제독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영예”라며 “미 해군 역사상 제독 계급장을 단 첫번째 베트남계 미국인이란 점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1975년 처음 미국령 괌 땅을 밟았을 때를 떠올리며 “미국 같은 나라에 있게 되어 얼마나 운이 좋은가 스스로 생각했다”고 회상한 응웬 제독은 “미국이야말로 우리(난민) 모두에게 희망의 신호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 해군에 복무하는 것, 우리의 조국을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 그리고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영광이자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코리안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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