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의 상담이야기 9] 말이 통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상담사로 있었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한 남자분을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상담을 받게 된 계기는 가정불화였습니다. 즉 아내와의 대화가 단절된 것입니다. 부부가 대화의 깊은 골을 자각하는 가운데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한 채 상대방을 향한 최소한의 의사전달을 위해서 쪽지로 소통을 대신하는 부부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서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부인의 필사적인 제안으로 마지 못해서 상담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분과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은 본인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맹신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대화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본인의 주관에 바탕을 둔 자신의 생각만을 되풀이해서 주장할 뿐이었습니다.

상담이 몇 단계까지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변화가 보이지 않아서 참으로 답답한 과정들이었습니다. 이분은 철저히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했으며 때때로 그러한 주장들이 누가 보아도 객관적인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본인은 믿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과 생각만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그것을 사실로 믿고 여기에 확신감을 결부시켜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상담은 아무런 의미 없이 공전하다가 결국 그분의 임의적인 결정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상담자의 질문이나 방법들이 그분의 완고한 생각의 틈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게다가 상담자에 대한 불신마저 감지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인 가브라엘 안톤이 제의한 것으로 ‘안톤의 실명’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안톤의 실명’이란 외부로부터 인간 뇌의 후두엽에 가해진 어떤 충격으로 인해서 시력에 문제가 생겨 실명하는 병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객관적인 병식으로는 분명한 실명의 상태이지만 정작 환자 본인은 시력이 기능을 행사하고 있어서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물을 실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착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안톤의 실명’이 정신의학에서도 차용이 되어서 이것을 ‘안톤 증후군’(Anton-Babinski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안톤 증후군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실존으로 믿고 거짓을 상습적으로 자아내고 또 이것을 맹신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장들이 개입될 여지가 없으며 오로지 본인의 생각만을 옳다고 확신하고 이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모든 자세들을 안톤 증후군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주장만을 확고하게 밀어 붙여서 타인의 생각이나 주장에 전혀 틈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이럴 때 우리는 참고적으로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들이 발생하는 배경 속에는 자신을 향한 주변의 기대와 현실 속의 자신을 조화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경험한 경우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이나 성숙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충분한 분회가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공존시켜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생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내 생각만이 옳다”가 아니라 “내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최민수 목사
The 낮은교회 담임
상담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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